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
그들의 희생은 여전히 오늘을 지탱하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눈물과 희생 위에 놓여 있는지를 잊곤 한다.
영화 《국제시장》은 그 소중한 사실을 126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뜨겁게,
우리 가슴속에 새긴다. 한 남자의 일생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 영화는 단순한 회고가 아닌,
모든 부모 세대를 향한 깊은 존경의 헌사라 말할 수 있다.
덕수의 삶이 곧 아버지들의 역사
부산 국제시장에서 오래된 물건을 파는 한 노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윤덕수'. 그의 가게는 낡고, 몸은 불편하지만, 결코 문을 닫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아버지가 돌아오실지도 모르니까….”
영화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 당시 덕수가 어린 시절 아버지, 여동생과 헤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이후 덕수는 '가장'이 된다.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무게는 어린 소년을 순식간에 어른으로 만든다.
덕수는 독일로 광부로 떠난다. 탄광 안에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뒤이어 베트남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의 끝마다,
그는 늘 가족을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한 편의 드라마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바로 그들의 아버지, 혹은 나의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난 내 인생을 산 게 아니여, 아버지로 살았지”
윤덕수는 영웅이 아니다. 화려한 인생도, 위대한 업적도 없다. 그는 단지 자신의 가족을 위해, 단 한 번도 자기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평범한 남자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가족을 책임지고, 때론 아들의 선택마저 대신하며 자신의 인생 전체를 '아버지의 역할'에 온전히 헌신한다. 그의 사랑은 조용하고, 무겁고, 끝까지 흔들림이 없다.
덕수라는 인물은 자기 자신을 지우고 가족을 품었던 그 시대 아버지의 표상이다.
영화 후반, 아버지의 유해가 판문점을 통해 돌아오는 장면. 덕수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한다. “이제야 아버지가 집에 오셨네…” 그 한마디에 담긴 시간의 무게, 그리움, 안도감은 관객의 심장을 똑같이 무너뜨린다.
삶은 희생의 연속이었다 독일, 베트남, 그리고 시장
덕수의 인생은 곧, 대한민국 격동기의 역사다. 그는 독일 광산에서 먼지와 어둠을 마주하고, 베트남 전쟁에서는 생사의 갈림길 위를 걸었다. 그리고 돌아와선 국제시장의 작은 가게를 지키며 살아간다.
이런 배경 속에서도 영화는 결코 억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덕수는 늘 담담하다.
일이 힘들다 해도, 다리가 아파도, 잊고 싶어도 그는 묵묵히 견딘다. 그 모든 시간이 끝났을 때,
그는 결국 한 가지를 말한다. “그래도, 후회는 없어.”
가족이라는 이름의 삶
덕수와 그의 아내 '영자'는 가난하고 고단한 시절을 함께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짧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는 신뢰와 사랑, 그리고 연대가 있다. 영자는 덕수에게 말한다.
“그렇게 혼자 짊어지고 살지 말라고, 나도 같이하자고…” 하지만 덕수는 자신이 가장이기에, 자신이 버텨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식들. 자식들이 성장하고, 다른 인생을 살아갈 때도 덕수는 변함이 없다.
자신이 보고 듣고 해온 방식으로만 세상을 설명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살아낸 이 세상이 너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덕수는 곧 우리의 아버지였다
《국제시장》은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라는 말에 모든 걸 담아버린 세대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무덤덤하거나 무의미하지 않다. 그 안에는 참았던 눈물, 말 못 한 사랑, 포기했던 꿈이 모두 담겨 있다.
윤덕수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그 이름도 몰랐던 수많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극장을 나오는 길에 문득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 생각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는다.
그저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한 남자의 삶
《국제시장》은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처절하고, 그 어떤 멜로보다 뜨겁다.
하지만 그 감동은 눈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누군가의 시간에 대해 고개 숙이게 되는 묵직한 감정이다.
윤제균 감독의 섬세한 연출, 황정민의 절제된 감정 연기, 그리고 모든 조연 배우들의 진심이 이 영화를 완성한다.
그저 ‘시대극’이나 ‘감동 실화’라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대한민국 가족사에 대한 경의다.
아버지의 세대를 이해하게 된 영화
《국제시장》은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 한 권의 오래된 가족 앨범 같았다.
손때 묻고 바래버린 흑백 사진 한 장이, 사실은 얼마나 큰 희생과 사랑을 받았는지 지나고나서야 알수있는법이다